한국 결혼 문화 (1961년~1980년, 결혼의 규격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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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_정치·경제]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들어선 박정희 군사 정권은 산업화를 통한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후진국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사회적 목표로 내세웠다. 이 시대는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성장을 추구하였고, 박정희 군사 정권은 쿠데타로 세워진 정권이기 때문에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공주의를 한층 강화하고 충효 사상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초중고교에서부터 반공과 충효라는 사상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국민윤리 교과목이 생기고, 대학에는 국민윤리학과가 개설되었다.
군사 정권은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의 전체적인 화합을 주장하며 국가 정책과 권력에 대한 어떠한 저항과 갈등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1968년에는 일제가 1890년 일본의 메이지 천황이 천황제에 기반을 둔 교육 방침을 공표한 ʻ교육칙어ʼ를 모방하여 ʻ국민교육헌장ʼ을 제정하는데, 이는 학생들이 강제성을 띠고 암송되었다. 순종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들이 만연했는데, 예를 들어, 영화관에서 ʻ국기에 대한 맹세ʼ가 암송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박정희 정부는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고, 「가정의례준칙」을 고시하였다. 가정의례란 개인의 삶 속에서 경험되는 중요한 사건과 관련하여 가족 단위로 행하는 일련의 의례들을 말하며, 혼례·상례·제례·회갑연 등이 이에 포함된다. 가정의례라는 개인, 친족 단위의 절차를 국가 차원에서 제한을 두었다는 것은 가정의례를 제재하는 것이 사회 체계 유지를 위한 매우 거시적이고 중요한 시안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속과 처벌이 없는 권고적 법률이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의례를 행함에 있어 허례허식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1973년 강력한 통치권을 획득한 대통령의 통치 체제를 내세운 ʻ유신정부ʼ에 의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전문 개정이 되고, 처벌 규정이 들어감으로써 법적인 강제성을 띠게 된다.
1970년대에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를 향한 사회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 사회가 정치·경제적 민주화를 이루어나가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유신체제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로 막을 내린다.
이 시대의 경제 부분을 살펴보면, 1961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매년 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나갔다. 특히 공업 중심의 수출 지향적 산업화가 시작되어 농민의 도시로의 이농화현상이 급속도로 추진되고 전 가구의 이농 증가 현상과 함께 가족 규모의 축소 및 핵가족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농촌 미혼여성의 이농이 증가하여 많은 여성이 수출산업 및 도시공장 노동자로 진출하였다.
또한, 이 시대에는 식량과 일자리는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196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되는데, 이것은 인구가 계속 늘어 인구성장률이 경제성장의 저해 요인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비교적 강압적인 가족계획 정책이 펼쳐짐으로써 평균 자녀수가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대적 배경_사회·문화]
국가 차원에서 생활의 통제를 위한 지속적인 의식개혁 운동이 시행되었다. 그 중 시행된 ʻ새마을운동ʼ은 한국 사회개혁의 큰 획으로 자리 잡았다. 새마을운동은 70년부터 농촌재건 운동의 착수로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 운동이었는데 초기에는 단순한 농가의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었지만 점차 도시, 직장, 산업 현장까지 확산되어 근면, 자조, 협동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의식개혁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문화적 측면을 살펴보면, 젊은이들 중심으로 파격적이고 다양한 문화 현상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미니스커트와 장발이다. 1970년대는 미니스커트와 장발이 젊음을 상징하는 문화 현상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주체적인 권리나 사생활조차 침해했던 이 시대에는 길거리에서 경찰이 자를 들고 다니면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치마 끝에서 무릎까지의 길이를 재고, 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장발을 단속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 및 문학 등 문화예술 분야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검열과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고려해보면 민주화와 문화적 자율성, 자발적인 시민사회로서의 발전은 퇴행하였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에 1970년대 민주화운동은 대학과 종교계, 노동계 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권위주의적인 사회 체계에 저항하고 부당함을 고발함으로써 민주화 실현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노동·민족 해방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러한 정신을 담은 다양한 문화가 생산되었다. 이러한 문화들은 공식적으로 대중매체와 같은 통로를 통해서는 드러날 수 없는 저항적 하위문화였지만, 당대의 지성인 집단인 학생들과 진보성향을 갖춘 시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포되고 사회운동권 문화나 민족문화 혹은 민중문화로써 자리 잡게 되었다.
[참고 서적 및 자료]
https://weddingculture.tistory.com/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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