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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대류 속에서 한국의 결혼문화는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초국가적인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문화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한국의 결혼문화는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면서 재생산되고,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함께 하나의 큰 웨딩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웨딩산업이란 예비신혼부부들을 위해 마련하는 집, 가전 및 가구, 예물 및 예단, 피로연과 예식, 신혼여행 또는 웨딩드레스 등 결혼생활과 관련된 넓은 분야를 포함하는 산업을 말한다. 그밖에도 웨딩서비스 산업(Wedding service industry)은 웨딩 스튜디오, 컨설팅,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한복, 예물, 예단, 부동산 등 광범위하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다양한 산업이다.

 

연애혼의 증가와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개인주의 가치관의 영향으로 기존에 결혼제도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사회의 존립을 위한 요구 사항이나 억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탈피하게 되고 결혼 당사자 간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상이 높아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교육수준이 상승하고 취업기회가 증가함으로써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부부관계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점차 변화해 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ʻ혼인ʼ이나 ʻ결혼ʼ이라는 단어보다는 ʻ웨딩ʼ이란 단어의 쓰임이 증가하게 되는데, 80년대 초반에는 결혼과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사항에 도움을 주는 결혼준비센터가 ʻ웨딩컨설팅ʼ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자리 잡게 되고, 90년대 중반에는 다수의 예식장이 기존 상호를 버리고 ʻ웨딩홀ʼ, ʻ웨딩타운ʼ과 같은 상호를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결혼이 양 가문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과거의 정통이 점차 사라지고 결혼 당사자의 주도하에 결혼이 진행되는 점진적인 변화 속에서 구식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결혼과 관련된 상품 소비의 주 의사결정권자인 젊은 층을 끌어드리기 위한 경영 전략적인 노력이 새로운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야흐로 결혼의 상품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화 개방 정책과 경제적인 여유는 당대 사람들의 시각적 미적 취향을 바꿔놓았고 이로 인해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차별화된 공간, 남들과 다른 특별한 행사를 찾는 이가 늘어나게 된다. 서양식 외관을 갖춘 건물들은 90년대에 들어서 전성기를 맞게 되고, 오늘날까지 결혼만을 위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신세대를 중심으로 신랑·신부를 찍어내는 듯한 공장 같은 결혼식을 탈피하고자 극장 결혼, 수목원 결혼, 수중 결혼, 스카이다이빙 결혼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식이 등장한다. 이에 따라 각양각색의 공간에 맞춰 혼주와 신랑·신부의 입장 방법, 의상, 식순, 피로연 음식 등까지 결혼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형태와 방법이 나타난다. 신랑·신부가 동시 입장을 하거나 양가 어른이 동시에 폐백을 받는 예도 있었다.

 

소비를 통해 ʻʼ를 드러내는 소비문화의 확산으로 1984년 혼수 품목을 한자리에 모두 준비할 수 있는 대형 ʻ혼수타운ʼ이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조성되는데, 최초의 혼수 전문백화점인 ʻ꽃가마ʼ부터 ʻ신혼방ʼ, ʻ반도 조선 혼수백화점ʼ, ʻ진양 꽃마당ʼ, 롯데쇼핑센터의 ʻ새 생활상담소ʼ 등이 대표적인 혼수백화점이었다. 이곳에서는 혼수와 관련된 거의 모든 품목을 한자리에서 구매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도시 외 지역에서 몇 주일에서 몇 개월까지 걸리던 혼수 준비가 이곳에서는 하루에 끝나게 되었다.

 

호화 결혼식은 여전히 인기였는데, 91년부터는 현재 소노펠리체 컨벤션인 삼성동 공항터미널과 63빌딩 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문화 개방과 함께 유입된 일본의 호텔예식을 본뜬 결혼식이 유행하였다. 이 형식은 오늘날의 ʻ동시 예식ʼ이라고 불린다. 이 예식에서 하객은 식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함께 한다. 하객들이 착석 하여 식사를 하는 동안 식이 진행되고 식이 끝나면 신랑·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내빈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방식이다. 호화결혼은 보편성을 띠는 결혼문화 속에서 소비를 통한 과시욕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특별함을 찾아내려는 노력의 하나로 지속해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 등장하여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결혼문화 중 하나는 결혼사진 촬영의 등장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결혼사진 촬영이 결혼 준비 중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 문화현상의 시작은 ʻ야외촬영ʼ에서 비롯되었는데 이후 90년대에는 넓고 다양한 인테리어의 대형 실내 스튜디오에서 상류층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결혼 전 기념 촬영을 진행이 되었고 이는 시장 확대를 통해 일반 대중용으로도 상품화하면서 결혼의 이상적인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신랑·신부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결혼문화의 한 면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9832월에는 웨딩플랜업체인 결혼준비센터가 한국에 선보인 이래로 웨딩산업을 주도하는 결혼대행업체와 웨딩플래너가 유망사업과 유망 직업으로 떠오르게 된다. 예비부부가 맞벌이인 경우가 늘어나고 복잡한 결혼준비의 절차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 관련한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기 위하여 웨딩컨설팅 업체들과 사진 촬영 스튜디오, 드레스 전문점, 웨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실들은 강남구 청담동 근방에 모여 있고, 이는 마포구 아현동을 잇는 새로운 웨딩의 메카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을 묶은 통칭인 ʻ스드메 패키지ʼ를 통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업체들은 80년대 후반 청담동 명품거리가 형성된 이후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전략으로 삼아 웨딩업체들이 모여 새로운 웨딩타운이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1997, 한국 경제와 사회에 불어 닥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의 영향은 결혼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현상도 불러왔다. 이는 은행 등 금융권의 대출이 막혀 결혼 자금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큰 지출이 필요한 결혼의 특성상 결혼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시와 사치보다는 실속 있게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도 늘어갔다. 평일 저녁 결혼식이나 무료 결혼식장과 공공기관, 평일 저녁 결혼식이 더욱 인기를 끌고 복잡한 피로연 절차를 생략하는 예도 있었다. 또한, 해외 신혼여행지가 아닌 국내 신혼여행지가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 시대에는 기성세대와는 커다란 시각 차이를 보이면서 기성세대의 권위 체제를 거부하는 세대들이 결혼의 주체자로서 등장하고 결혼과 관련한 결정 및 진행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주도적으로 행하게 된다. 또한, 웨딩산업의 등장과 발전은 결혼을 자본주의 논리 속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결혼과 관련된 과정 및 진행을 전반적으로 상품화하였다. 하지만 이를 통해 웨딩업계의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고객 유치를 위한 기획물들이 다양화 되었고 이러한 추세는 한국 결혼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참고 서적 및 자료]
https://weddingculture.tistory.com/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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